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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동화 #0

Prologue / 랠리

어른 동화

Prologue

 

 

 

 

 

 

 

 

세상에 퇴색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운동화 끝에 차일 만큼 넘치는 공산품도 솜씨 좋게 만들어 놓은 수공예품도 언젠가는 제 빛을 잃는다. 무언가를 향한 열망이나 기백, 누군가에 대한 감정, 심지어 인간의 삶마저 반드시 저물어간다.

지민은 이 덧없는 진리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 없었다. 여태까지 제 삶은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유영하듯 흘렀다고 여겼고, 가끔은 조방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므로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게 아무렇게나 사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혹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추어졌을지도 모른다. 지민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꾸준히 지리멸렬했기에 자신을 에워싼 모든 것을 무디게 여기고 싶었다. 딱히 관심을 두는 구석이 없었고, 늘 표정 없는 얼굴로 제 주변의 모든 것을 대했다.

“예, 책은 직접 와서 찾으셔야 합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책을 찾는 이들의 전화를 받았다. 지민은 그때마다 무뚝뚝하게 대꾸하며 전화를 끊었다. 활자를 읽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기에, 굳이 책을 찾으려고 전화를 거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일하는 곳은 낡은 헌책방이다. 그게 왜 아이러니인가하면, 여기에 들르는 이들이 지나가는 것을 붙잡기 때문이다. 주머니에서 나온 몇 푼의 지폐로 종이에 박제된 이야기를 골라간다. 세상을 떠돌던 온갖 책들이 거쳐 가는 곳. 누군가의 무관심에, 또는 필요에 의해 손을 떠나 흘러가다가 새 주인을 만나게 되는 곳.

“…직접 와서 찾으세요. 못 찾아요. 책 많아서.”

오늘따라 책 찾는 전화가 세 번이나 울렸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들어오고 나가는 헌책들에는 바코드도 명단도 없다. 지민은 그게 자신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퀴퀴한 먼지가 부유하는 서가에 꽂혀있는 신세며, 가게 앞에 널브러져 있다가 발에 차이는 꼴이며 말이다. 성가시게 하는 전화를 세 번이나 받고나자 지민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도 헌책이 조금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기에.

 

그가 일하는 헌책방은 오래된 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마치 70년대 청계천 길목을 필름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외관. 손때가 누렇게 핀 콘크리트나 고동빛 새시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통유리로 된 입구는 쇼윈도라고 하기에는 다소 경망스러울 정도로 떡진 시트지가 달라붙어 있었다. 가게 앞 가판부터 유리문에 이르기까지 낡고 촌스러운 표지의 헌책들이 잔뜩 막고 있어서, 문으로 들어가려면 발끝으로 책 더미를 차며 나아가야 했다.

벼룩시장 끄트머리에 있던 ‘월급 90만원, 식사제공’, 이 문구가 지민을 이곳으로 이끌었으나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외딴 헌책방에 처박혀 일한다는 것은, 달에 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번다는 사실 따위는, 그의 자존심이나 수치심을 건들지 못했다. 번듯한 의식주나 말동무가 없더라도, 책 먼지를 털고 식은 밥덩이를 뱃속에 쑤셔 넣으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만이 그를 살게 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그의 삶은 그토록 무미건조하여 보는 이가 다 버썩 마를 정도였으니.

다섯 평 남짓의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월넛 빛 책장. 좋은 나무를 썼는지 천연 향이 근사하게 퍼졌다. 그리고 종이 냄새. 이 또한 나무의 향일 것이다. 가게의 다락방에서 먹고 자는 일흔이 넘은 주인장은 누렇게 뜬 모조지에 박제된 허황된 이야기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지민은 온종일 책을 읽는 노인네가 이해되지 않았다.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콧잔등에 걸친 채 일과의 절반 이상 활자를 읽는 데에 시간을 쓰다니. 그 고즈넉함은 언제 봐도 적응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따라 할 일이 많았다. 한 트럭 도착한 헌책들을 서고에 옮기는 고된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주인장이 자리를 비운 날이라 혼자서 그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한참을 정리하다가 간간히 들어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지던 참이었다. 그때 가게 전화벨이 울렸다. 그걸 들으니 싫증부터 났다. 오늘 세 번이나 울렸던 전화 벨소리. 다 지긋지긋 했다. 혹시라도 또 다시 책을 찾는 전화라면 짜증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여보세요.”

- 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리는 남자의 낮은 음성에 지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책 못 찾아 드립…”

- 오래전에 이곳에 맡겨 두었던 책입니다.

상대의 목소리에 지민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맡겨 두셨다고요?”

지민이 다시 한번 되묻자 상대 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지민은 목소리를 높여 다락방을 향해 사장님! 하고 외쳤다. 하지만 이내 깨닫고 만다. 주인장은 일주일이 넘게 가게를 비울 요량으로 새벽부터 고속버스를 타고 사라졌다는 것을.

“아 지금 사장님이 안 계시는데요.”

- 일주일 뒤에 제 책을 찾으러 오겠습니다.

“네?”

지민은 남자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했다.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섞여있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나 상대는 자신이 찾는 책이 무엇인지 담백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찾는 책은 총 8권의 동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지민도 한 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제목들이었다. 독특한 것은 이 동화 책들이 출판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자는 자신이 직접 수기로 작성한 책이라고 말했다. 그가 어째서 이 헌책방에 자신의 책을 맡겨 두었는지, 주인장과는 어떤 사이인지 하나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어쨌든 일주일 뒤에 찾으러 오겠다는 말에 지민의 마음이 급해졌다.

“아, 그런데 저기요.”

그러나 전화는 단호하게 끊겼다. 뚜뚜뚜- 반복된 소리만 귓가에 웅웅 울렸다. 책방 안에 있는 수많은 책 중에 도대체 그 8권의 동화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하루 종일 좋지 않던 기분에 불쑥 짜증이 올라왔다. 지민은 발신 목록을 뒤져 재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책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

하지만 곧장 들려오는 소리에 지민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바싹 굳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조금 전까지 통화했던 번호가 없는 번호로라니. 순간 누군가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왠지 모르게 소름끼치는 기분에 지민은 자신의 팔뚝을 손으로 쓸었다.

 

그는 하던 일을 마저 하며 그 전화를 무시해버리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분이 이상해졌다. 혹시라도 주인장과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책을 찾아 놓지 않아서 곤란한 일을 겪진 않을까. 지민은 결국 옮기던 책을 내려 두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창고로 향했다. 수 많은 책들을 몇 번 뒤적거리다 보니 한숨이 터졌다.

“대체 어떻게 찾아….”

한참을 뒤졌다. 그러나 그가 말한 책으로 보이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 지민은 무엇 하나가 떠오른다. 그래. 주인장과 아는 사이라면, 그의 다락방에 있지 않을까.

 

 

지민은 헐레벌떡 닫혀 있던 다락방으로 향했다. 맡겨둔 물건이라면 이런 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방 안으로 뛰어가 책장을 뒤졌다. 그러나 책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어디에 있지.

대체 그 책은 뭐지.

두리번 거리던 지민의 눈에 무엇 하나가 들어왔다. 커다란 책장 아래의 서랍장. 높이와 깊이가 있어 보이는 그곳. 지민은 망설임 없이 서랍을 열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낡은 나무 서랍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찾았다!”

그곳엔 낡은 책더미가 있었다.

 

 

지민은 서랍에 있던 책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정말로 수기로 꾹꾹 눌러 작성한 책이었다. 군데군데 낡아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영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민은 책들을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깨닫고 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일곱 권이다. 그 남자는 전화로 총 여덟 권이라고 했다. 분명히.

이상했다. 한 권은 어디로 갔을까. 분명히 서랍 안에 있는 모든 책을 가지고 나왔다. 지민은 묘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책 한 권을 조심스레 펼쳤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지민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

어릴 적 들은 적 있던 동화였다. 지민은 그 낡은 책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날 밤, 반드시 꿈을 꾼다.

 

지민은 일곱 번의 꿈을 꾼다.

그 꿈은 한 편의 동화였다.

 

그리고,

자신과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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